2017년 7월 13일 목요일

[번역] JK 롤링과 담론의 솥


원문 https://samkriss.com/2016/09/13/jk-rowling-and-the-cauldron-of-discourse/

내가 JK 롤링이 실세계를 내다버렸다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롤링에 대한 어떠한 비판을 하려는 것이 아님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수중에 10억 불이 있다면야 실세계 따위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그러니 롤링이 왜 실세계를 내다버리고 마법의 세계로 가버리셨는지 설명할 필요는 애초에 없으리라. 그리고 그 마법세계의 주민은 롤링 그 자신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에든버러의 길거리에서, 익숙한 것들이 제 구실을 하기 시작한다. 예컨대 사슬에 묶인 트롤이 버스 바퀴 뒤에서 그렁거리고, 그 버스는 하노버 가와 할리우드 사이를 끝없이 왕복하는 을씨년스러운 업무를 계속하는데, 간단한 1학년짜리 주문 인스트루멘티오Instrumentio로 정신기능감퇴를 일으켜 그걸 숨긴다. 그렇지 않고서야 로디언 6번 버스가 왜 하필 그 분이 옆을 걸어가던 과거의 그 순간 웅덩이를 밟아 물을 끼얹고 지나갔겠는가? 오카도[역주―Ocado. 한국으로 치면 지마켓]의 훈제 연어가 3주 내내 품절 상태라면 당신은 그것이 아마 공급망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장 비효율에 인생이 결정되는 또 다른 사람, 하지만 더 잘 아는 양반이 계시는데, 그 분이 영수증을 보니 또 연어가 고등어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그걸 보자마자 그 분은 그것이 니플러 새끼들이 창고 바닥을 몽니사납게 돌아다니면서 무언가 값비싸 보이는 것은 모조리 코를 처박고 냄새를 맡아댄 결과, 두툼하고 반투명한 연어 대뱃살이 걸신들린 니플러들의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린다. 새벽 세 시에 헬리콥터들이 날아다니며 잠을 방해하면, JK 롤링은 그 소리가 탈주한 늑대인간의 소리임을 알아차리고, 의사당 앞에 정치적인 젊은이들이 모여있으면 그걸 후드를 뒤집어 쓴 디멘터들이 우글거리는 것으로 보고 몸서리를 친다.

보다 일상적인 것에까지 이는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롤링의 옷을 꿰매고 기워 주는 것은 자발적인 집요정 군단이며, 현금지급기 너머에선 성가신 각다귀떼 같은 고블린들이 분별껏 은행어음을 롤링에게 내밀어준다. 롤링은 이 회색조 반쪽짜리 세상에서 그를 따라주는 해그리드와 덤블도어와 기타 모든 이들의 충고에 고마워한다. 그는 자신이 세상의 다른 지루하고 멍청한 사람들과 같지 않음에, 자신에게 활발한 상상력과 부유한 정신적 생활이 있음에 기뻐한다. 물론 롤링은 이 모든 마법사들과 그리핀들이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것이며, 그것들은 모두 실재가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러나 10억 불이 수중에 있다 한들 우주를 자기 맛대로 재배열할 수는 없는 반면, 자신이 만들어낸 그것들은 자기가 모든 세부사항까지 일일이 통제할 수 있기에 롤링은 그것들에 파묻혀 살기를 선호한다. 하지만 세상 만사가 어디 항상 그렇게 명쾌하던가. 롤링은 때때로 해리가 언제나 거기에 존재하며 자신에게 해야 할 일을 일러줌을 확신하는 것 같다. 해리가 롤링에게 책을 쓰라고 말을 했고, 롤링은 집구석으로 들어가 책을 썼다. 때는 바야흐로 거의 자정이었고 해리 포터는 침대에 배를 깔고 누워 있었다. 때는 사실 자정 무렵이 아니었고, 해리 포터도 침대에 배를 깔고 누워 있지 않았다.

물론 이 글은 JK 롤링의 정치적 오지랖, 롤링 자기 머리속에서 만들어낸 어떤 가공의 마법사가 롤링 자신의 의견을 공유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모호하고 멋없는 반응을 정당화하는 그 병적인 경향에 관한 것이다. 롤링은 자기가 만들어낸 세계에 실세계를 먼저 대입시켜보지 않고서는 실세계에 관한 어떠한 생각이란 걸 하는 게 불가능한 듯 보인다. JK 롤링은 손에 덤블도어 양말인형을 끼고 목소리를 낮게 깐 채 자기가 했던 모든 소리들을 녹음기 틀면서 스코틀랜드 국민주의자들과 팔레스타인 연대운동가들과 노동당 당내 좌파들을 갖은 방법으로 빡치게 만들어 왔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뿐 아니라 롤링 자신의 팬들 중 다수도 빡치게 만들었는데, 이게 바로 이야기를 시작할 지점이다.

2007년, 롤링은 자기 캐릭터 덤블도어가 게이라고 선언함으로써 널리 찬양을 받았다. 텍스트 안에는 그 사실을 짐작케 할 만한 어떤 사실정보도 없었는데 말이다. 이때 롤링은 자기가 성소수자 이슈의 실제 지지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올해 롤링은 팬들에게 니들의 뇌내망상은 모두 틀렸고, 다른 캐릭터 시리우스 블랙은 게이가 아니라고 했다가 폭풍까임을 당했다. 팬들은 자신들이 이 캐릭터들과 함께 성장했으며, 이들을 어떻게 독해해야 하는지는 우리가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JK 롤링은 끝났다. 그들은 그렇게 선언했다. 근데 롤랑 바르트[역자주―바르트는 "저자의 죽음(…)"과 "텍스트의 무의미"를 이야기했다] 이래로 벌써부터 뒤져 있지 않았던가 싶은데(아니면 더 길 수도 있고. 모든 약속(구약 신약 할 때 그 약속)이 마지막 약속이라는 핑계는 언제나 존재해 왔다. 어째서 하나님께서 성스러운 책을 내려보내신 이후로는 세상에 활발히 개입하지 않으시는지, 어째서 중세 카발라주의자들이 독자 반응형 이론을 만들어냈어야만 했는지, 그리고 천주교회의 내뇌망상headcanon 등등이 모두 그런 사례 아닌가). 어쨌든 여기 관련된 사람들 중에 데리다를 실제로 읽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란 점만은 분명하다.

해체deconstruction라는 것에는 많은 정의들이 있는데, 그 중 딱히 더 좋은 정의는 없지만, 텍스트의 텍스트성을 망각하기를 거부하는 독해 태도라고 대충 퉁칠 수 있을 것이다. 텍스트의 텍스트성이란 쓰여진 물질적 기질 위의 유표들의 집합으로서 읽히고, 복사되고, 오해되고, 무시되고, 또는 파괴되는 대상일 수 있는 것이 바로 텍스트라는 사실을 말한다. 다시 말해 어느 한 개인만의 세계관으로 뿅 화하기에 앞서 공유되는 존재로서 먼저 존재한다는 것이다. 성소수자 팬들을 달래 보겠다고 롤링은 그 직후 자기 책에 나온 늑대인간들은 사실 에이즈를 은유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모든 문제에 있어 롤링의 입장은 분명하다. 자기가 이야기들을 썼고, 자기가 이야기들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이야기들이 더 넓은 담론의 장으로 흘러나간 뒤에도 여전히 본질적으로 자기 것이라는, 본질적으로 개인적이라는 것이다. 트위터의 롤링 계정의 헤더 이미지는 두 줄 짜리 텍스트만 적혀있는 이미지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덤블도어라면 어떻게 했을 지는 내가 안다. 받아들이시오.”그러니까 해리 포터 시리즈의 진짜 텍스트는 인쇄된 페이지가 아니라, 롤링의 두 귀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며, 롤링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변형될 수 있는 것이다. 롤링의 플라톤적 우주론에서 가공의 사건들은 그 자체로 빛나는 실재이며, 그 빛은 롤링의 입을 통해 뿜어져 나온다. 롤링은 문학 이론상 팬덤의 뇌내망상질 모델을 따르고 있으나, 다만 다른 점은 롤링의 뇌가 가장 거대하고 가장 비대하게 부풀어오른 뇌이며, 또한 유일한 뇌라는 것이다. 롤링이 작가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 말고는 이 텍스트의 부정을 독해할 다른 방법은 있을 수 없어 보인다. 가끔 헌신적인 팬들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자기들의 최애문화상품의 이야기들이 진짜인 것처럼 행동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그 중심에 자기를 올려놓는 식으로 광란의 지랄을 벌일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그 최애문화상품이 그들의 소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JK 롤링이 하고 있는 짓은 그런 팬들이 하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지랄이다. 그가 자신의 창작물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순간, 창작물은 무시무시하고 귀신 같은 자율성을 획득한다. JK 롤링은 그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가 아니다. 그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최대 팬인 것이다.

롤링의 기묘한 정치분야 오지랖과, 문학적 요술을 발휘할 힘을 세속적 원인을 가진 시시하고 비참한 일들에 대해서는 사리는 것은 바로 이 맥락에서 읽을 때 비로소 말이 되기 시작한다. 팔레스타인 시민사회가 요청한 이스라엘에 대한 학계 보이콧을 롤링이 거슬리는 소리로 반대했을 때, 롤링이 반대한 방법은 자기 책의 도덕적 메시지를 장문의 글로 훈고(訓告)하면서 BDS는 틀렸으며, 그 이유는 마법사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 글을 결론짓는 것이었다(좀 공정하게 말하자면, 롤링은 해리가 처음에는 중립적인 팔레스타인 동정론자였을 가능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시리즈 마지막 책 마지막 부분의 어른이 된 해리는 이스라엘이 존재할 권리가 있음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한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한다는 국민투표 결과가 나왔을 때, 그의 공식적 반응은 “지금만큼 마법을 실제로 원한 적이 없다”였다. 아마 무기명 투표 수백만 표를 조작하는 마법을 부리고 싶었나 보다. 제레미 코빈 지도부에 대한 롤링의 반대는 소위 선출가능성에 대한, 언제나처럼 혼란스러운 반쪽짜리 생각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롤링은 당내 우파와 그들의 포괄적 물 탄 보수주의 브랜드가 지난 10년 간 두 차례나 패배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롤링 본인이 고집하듯이, “코빈은, 덤블도어가, 아니다”가 어쩌면 롤링의 코빈 혐오를 뒷받침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사실 그 말은 사실이다. 제레미 코빈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현명한 늙은 마법사만큼 좋은 사람이 아닐 수밖에 없다. 코빈은 가장 기초적인 주문도 외우지 못하는 무능을 드러냈으며, 모두에게 사랑받는 실패할 수 없는 선(善)의 화신의 역할을 하는 것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대실패했다. 코빈은 가끔, 심지어 롤링이 원하지 않을 때에도 JK 롤링의 입장과 상반되는 입장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롤링에게 10억 불을 줄 수 있는 아량을 지니고 있지도 않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지금까지 늘어놓은 말들 중 비유-유추적 표현은 하나도 없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롤링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보다 열등한 팬들에게 그들의 유추는 채택될 수 없다고 말해 왔다. 유추란 가공의 시나리오가 현실의 사건의 대응물로서 기능하며, 그럼으로써 객관적 상황을 상호주관적이고 상호합의적인 무언가가 설명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롤링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반대다. 실제의 사건들이 자기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을 무단침입하고 있으며, 실세계는 해리 포터 세계의 불완전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롤링의 정치성향은 해리 포터 판타지를 창조하지 않았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는 해리 포터의 작가가 아니라 팬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해리 포터 시리즈 스스로가 주류 정치 밖의 모든 잠재적 파시즘을 증류하는 솥으로 작용한다. 그 솥에서 담론들이 끓어 질척한 녹색 슬라임으로 배출되고, 롤링은 그 슬라임을 단숨에 꿀꺽하는 것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호그와트의 기숙사들을 정치 이념들에 대입해보는 재미난 놀이를 하는데, 대개 자기가 좋고 싫은 이념을 나열하는 순위 매기기로 끝난다(그리핀도르는 나같은 멋쟁이 리버럴이얌! 도널드 트럼프는 볼드모트얌!) 이건 기숙사들을 제대로 독해하는 방법이 아니다. 유형으로 나뉜 각 부분들은 하나의 특정 유형을 예증한다. 그런즉 네 개의 기숙사는 넷이 어우러져 하나의 단일한 인생관을 표현한다. 그리핀도르는 파시즘 이념 자체에 충실한 파시스트다. 강하고 고귀하고 명예로우며 노랑머리에, 차이를 인정할 줄 알되 적절한 한계 안에서만 인정하는, 타고난 엘리트란 파시스트적 자아의 필수요소다. 슬리데린은 롤링이 외부 세계에 보여지는 것과 똑같은 형상이다. 롤링 자신의 부정적인 면들이 대놓고 미워하라고 만든 애들에게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멍청하고 우둔하지만 본질적으로 마음씨만은 착하다는 허플퍼프는 파시즘의 이상적인 피지배 대상이다. 레이븐클로는 이 개념적 행렬에 융화되기를 저항하는 듯 애매한데, 그 제외됨이야말로 전체 큰 그림을 완성하는 연속체다. 20세기 초에는 이런 종류의 인간들을 일컬어 유대인 패거리라고 불렀다.

해리 포터는 더할 나위 없는 반동적 우화다. 해리 포터가 다루는 판타지는 용이나 빗자루 따위가 아니라 영국 계급사회의 낡아빠진 판타지다. 해리 포터는 마법세계의 이튼 교에 입학하게 된 소시민 소년으로(그리고 어쩌다 보니 그 학교는 사실상의 노예노동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자기 앞길을 가로막는 몇몇 시련들을 마주하지만, 다 이겨 내고 결국 귀족 계급제도에 안착해 인정받게 된다. 시리즈를 관통하는 도덕 딜레마는 불평등에 관한 딜레마들 중 하나다. 자신들의 강력한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자신들 이외의 주변 사회보다 선천적으로 우월한 집단이 있고, 당신이 그 집단 안의 한 계층을 차지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시리즈의 인기를 설명하는 방법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해리 포터는 책을 사랑하고 책읽기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에게 도취된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읽고 있는 것에 관해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해리 포터는 애들 보라고 쓴 책이 아니며, 그 애들이 커서 될 29살 먹은 지루한 인적자원 노동자를 위한 책이었다. 해리 포터를 무비판적으로 읽는 것은 허플퍼프식 인생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볼드모트와 죽먹자 패거리의 만화에서 오려낸 것 같은 투박한 파시즘은 열등인종을 모조리 죽이고 노예화하고 지배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선역이라는 애들은 마법사 세계가 그 우월성으로 똘똘 뭉치며 원한일랑 속으로 끓이기를 원한다. 모든 성인들은 정부 관료제에 고용되어 있으며 그 정부 관료제의 유일한 목적은 마법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악역들과 선역들이 사실 대립항이 아니며, 그저 단일한 이념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입장들일 뿐임을 명심하자. 덤블도어와 볼드모트의 차이점은 백인 국민주의와 백인 우월주의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만큼 불명확하다. JK 롤링이 덤블도어라면 어찌어찌 했을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작품 전체의 정치성향을 선언하는 것이며, 모든 선역들과 악역들이 하나로 합쳐져 그 단일한 성향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해리 포터 팬덤 해석학자들이 이해를 실패하는 지점이다. 당신은 해리 포터 텍스트에서 어느 한 인물만을 잘라내 받아들일 수 없다. 텍스트 전체를 한꺼번에 삼키기만 가능하다. JK 롤링이 복화술로 착한 마법사 인형이 호그와트맨은 팔레스타인 연대나 사회주의를 슬퍼할 것이라고 말하게 만들 때, 롤링의 머리를 잘 보라. 그 머리통이 돌아가면서 어둠의 마왕의 창백하고 악의적인 입이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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