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8일 토요일

[번역] Identity 번외편 ∼유메의 흔적∼


「유이, 일어나」

시곗바늘은 벌써 10시를 가리키고 있다.
아무리 오늘이 토요일에 쉬는 날이라고는 하지만, 유이가 드물게 이 시간이 되어도 안 일어나기에 걱정이 되어 나는 살짝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유이는 전혀 일어날 기미가 없고 그런 내 손을 꽉 쥐더니 마치 어머니의 손을 잡아 안심한 아이처럼 더 깊게 편안한 잠에 빠진다.
어제는 뭐가 그리 피곤한 일을 했을까?
딱히 늦게 잠자리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쩄든 아직 자고 싶어 하는 것을 더 무리해서 깨울 마음이 없어진 나는 쥐여진 오른손에서 유이의 왼손 손가락을 하나씩 풀어 나갔다.
검지,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을 풀려는 순간 검지가 원래대로 돌아간다.
다시 한 바퀴 돌아서 검지, 새끼, 마지막에 엄지….
모든 손가락이 펴지고 내 오른손이 해방된다.
그리고 유이의 왼손에서 내 오른손이 빠져나가자 점차 그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유이의 왼손 손바닥에 남은 흉터.
지능선과 감정선을 한 줄로 연결하듯 새끼손가락 밑에서 엄지와 검지 쪽으로 향해 쭉 뻗은 봉합자국.
이 상처를 입고 벌써 몇 년이나 지나 꽤 얇아졌지만, 그래도 아직 없어지지는 않았다.
내 기억에서도 없어지지 못할 흉터.
나는 유이의 왼손을 뺨에 대고 그 상처가 생긴 그날의 기억을 회상한다.


***


「쨔―잔!」
「에―에!? 뭐야 뭐야? 웬 거야 이게」

나의 1번 단골손님 유이가 고급 브랜드 종이가방 속에서 꺼낸 것은 새빨간 드레스.
마치 상류계급 무도회에서나 입을 듯한 디자인과 가슴에 박힌 보석이 너무 눈부신 그 드레스를 유이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내게 내놓았다.

「요번에 보너스를 받아서 스스로 포상이라도 살까 생각했는데
이걸 보니까 절대 유메한테 어울려! 그렇게 생각하고 사버렸지롱」

「비싼 거 아녜요? 미안해라, 이렇게 좋은 걸」

「괜찮아. 나는 유메가 입어줬으면 해서 산 거니까」

「그래…?」

계속 거절하기도 유이에게 면목이 없고 나는 그 드레스를 받아 내 옆에 두었다.

「슬슬 가게로 갈까?」
「응, 가요」

이런 선물을 받고 이제는 가게에서 돈을 쓰게 만든다. 왠지 아주 나쁜 짓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울적하게 되어 버리지만, 유이가 먼저 가자고 하니 어쩔 수 없다.
내가 동반을 허락하는 것도 유이 뿐이고 이렇게 선물을 받는 것도 유이 뿐.
어딘가의 기업 사장님이나 회장님, 억지로 부하직원들을 끌고오는 시원찮은 부장님, 그런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응하지 않고 아무 것도 받지 않는다. 원래 가게 방침이 호객 금지에 연애 금지. 내가 그것을 충실히 지키는 것도 있지만 애초에 내가 그런 사람들에게 일절 관심이 없었다.
그치들이 가게에 와서 돈을 잃고 돌아가면 그게 내 이익이다. 단지 그뿐의 관계.
그런데 이 유이라는 애는 처음부터 좀 달랐다.
애초에 트젠바에 여자 손님이 혼자 오는 일 자체가 드물다.
온다 하더라도 흥미 위주의 언론 관계자나 잡지 편집자 정도.
당당하게 카운터에 앉아 마담과 일대일로 이야기하고, 그런 일이 몇 번 계속되던 어느 날, 그날은 마침 마담이 가게에 없어서 내가 유이의 상대를 하게 되었고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것도 아니고 독주를 꿀꺽꿀꺽 마시는 것도 아니다.
칵테일이나 과일소주 같은 가벼운 술을 한두 잔.
기본적으로는 유이가 일방적으로 말하고, 내가 거기 맞장구를 친다.
그러다 가끔은 시선을 다른 뉴하프에게 향하고 저애는 타치? 고양이? 라던가, 저애는 어디까지 공사했어? 그런 속된 질문을 던진다.
그런 질문은 당연히 내게도 닥쳤는데 나는 왠지 대답을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건 뭐, 내 성벽이나 취향이 이해받기 어려운 것이니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 것 자체가 내키지 않았고 말한들 이해받지 못할 것이 두려워서였는데, 이제 와 생각하면 좀더 솔직하게 말해도 되지 않았었나 싶다.
게다가 유이라면 초면일 때부터 모든 것을 받아줬을 것 같다.
어쨌든 유이는 내가 보기에 그정도로 희한한 여자였고, 처음 보는 스타일의 여자였다.


「안녕―들 하셔요」
「어머, 또 동반? 이야 샘난다!」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마담의 말이 우리를 덮친다.

「마담, 질투해요?」

그것을 자극하는 유이의 반격은 매번 있는 일이지만, 조마조마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마담은 자기 손님이던 유이를 단 한번의 접객으로 내게 빼앗겨 버렸으니, 질투가 100% 없다고는 말 못할 터.
그래서 내가 유이와 동반하면 반드시 그렇다는 말을 하고 오고, 나는 카운터에서 입구가 보이는 이 가게의 협소함이 너무 싫었다.

「뭐 아무래도 좋잖아. 유메는 No.1인데, 라이벌이 많다구」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지―?」

그지―? 라는 물음에 대답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난처한 나머지 웃음만 돌려주고, 불이 켜져 걸린 마담 쪽은 보지 못한 채 「어머, 기세등등하네」라는 말만 하며 안쪽 테이블 자리로 유이를 이끌었다.


「유메쨩은 좋겠다」

한 잔째의 그레이프후르츠 사워 칵테일을 반쯤 마신 유이가 그렇게 말했다.
벌써 취했을까. 검지로 내 가슴 위를 덧쓰면서 풀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접촉은 금지예요」
「쩨쩨하긴…. 괜찮잖아 여자끼리니까」
「안―돼요」

그렇게 말해도 멈추지 않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마침내 옷 속으로 들어가더니 유륜 그리고 뒤이어 유두에 닿으려는 순간 나는 유이의 손을 뿌리치고 술 깨라고 냉수를 건네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아―?」
「다른 손님이 지명해서요, 미안」
「우―…」

볼멘 얼굴의 유이를 남겨두고 나는 다른 손님의 자리로 이동했다.
나도 유이 옆에 있고 싶어. 하지만 다른 손님의 상대를 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
여기는 데이트하러 오는 것이 아니다.
술을 마시는 것도, 우는소리를 하는 것도, 노닥거리는 것도 모두 일.
유이도 내게는 손님 중 하나일 뿐.
그 선을 넘어설 수 없다.
내가 없어지면 유이는 으레 카운터 자리로 이동한다.
그리고 마담에게 우는소리만 늘어놓다가 시원한 자리로 돌아온다.
오늘도 내가 자리를 뜨자마자 자기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유이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추적한 뒤 나도 100% 업무 모드로 바뀌었다.

하지만….
유이와 헤어지고 시간이 꽤 지났다. 그런데도 유이의 말이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유메쨩은 좋겠다"
어째서 유이는 그렇게 말한 것일까….
나는 전혀 좋지 못하다. 도리어 어느 쪽이냐 굳이 말하자면 유이 쪽이 더 좋을 터이다.
여자의 마음으로 남자로 태어나서, 하지만 여자니까 여자답게 굴고 싶고, 그래서 여자답게 행동하면 그때마다 모두에게 희롱당하고 치부되고 멸시받고 미움받고 괴롭힝받고
그것은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 몰래 화장도구를 사용했다가 걸렸을 때, 어머니는 나를 멸시했다.
휴일이면 여자 차림을 하고 놀러 나가는 나를 아버지는 방에 가두었다.
친척들의 관혼상제가 있을 때면 나의 차림은 모두 부모가 감시하는 앞에서 해야 했다.
모든 것은 나를 남자로 만들기 위해서….
그런 환경의 어디가 좋겠단 말일까….
물론 유이는 아직 모르니까 무심코 그렇게 말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의 내 상태는 좋게좋게 타고난 것이 아니다.
소위 트젠바의 지명 No.1을 따냈지만 그것은 자신의 노력의 성과.
게다가 내가 유메라는 모습을 하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 가게 안에서 뿐.
한 걸음만 밖으로 나오면 그곳은 내게 너무 갑갑해 살기 어려운 세계.
성별이라는 포박에 칭칭 묶인 파란색과 빨간색밖에 없는 세계.
보라색이나 분홍색이나 검은색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
그런 세계에 푸른색도 붉은색도 아닌 채 태어난 나는 적어도 복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아마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럼 또 올게, 유메쨩」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마지막 손님을 배웅하고 후― 한숨을 내쉰다.
겨우 오늘 일이 끝났다. 결국 그 말은 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그렇게 신경 써 봤자 어쩔 수 없다. 빨리 정리를 하고 돌아가야지, 빈 병과 잔을 정리해 우리는 뒤켠의 부엌으로 들어갔따.

「욕봤다, 유메쨩」
「아, 마담. 수고하셨어요」
「정리는 됐고, 이야기 좀 할까?」
「엣…. 네…」

여느 때보다 마담의 얼굴이 험하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짐작가는 것도 없이 나는 마담을 따라 2층 창고로 올라갔다.

「서 있기도 그렇고, 의자는 없지만 앉아라」

나는 말하는 대로 맥주 케이스를 의자 삼아 앉고 마담도 마찬가지로 근처의 작은 선반 위에 앉았다.

「귀찮으니까 솔직하게 대답해. 유이하고 어찌 된 거야?」
「엣…. 유이라면…」

이런 데까지 불러내서 묻는 말이 그것이라니, 역시 유이가 나를 마음에 들어함을 마담은 달가워하지 않는 걸까.

「유이는… 손님일 뿐인데… 사이는 좋지만…」
「좋지만?」
「그 이상은 없어요… 왜냐면 여기는 그런 거 금지니까」
「그건 유이한테 말했고?」
「아뇨, 말은 안 했지만…. 하지만 유이도 그건 알 걸요」

마담은 가발을 벗고 뻗친 머리를 긁다가 더 험한 얼굴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쟤가 오늘 뭐라 말했는지 아니.
"내가 유메를 좋아하게 되면 유메는 여기 못 있는 거지요"라더라.
내가 그렇지. 라고 말했더니 그 이상은 아무 말도 못하는 거야…」

유이가 나를 좋아함은 나도 어렴풋이 알아챘다.
그래서 별로 놀라지는 않았지만 나도 그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쩔래…?」
「하지만… 여기서 지내는 동안은 유이와는 사귀지 못하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

정말이라….
왜 그 말이 이렇게까지 내 마음을 후비는 걸까….
내가 이곳에서 일하는 이상, 내가 유메인 이상 유이를 손님 이상으로 볼 수는 없다.
그것이 정말이고, 그것을 지킬 수 없다면 나는 여기를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내가 유이를 사귀지 못하는 것은 정말….
정말인데….

「여기 규칙은 너도 잘 알겠지. 제대로 일하는 만큼 줄 수도 있다고 난 생각해.
하지만 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편이 좋을 거다….
어느 쪽으로 자빠지든 네 깜냥이지. 그래도 기왕이면 밝은 쪽으로 자빠지려무나」

마담은 가발을 다시 쓰고 창고를 나간다.
남겨진 내가 거기서 잠시 헤어나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눈부신 아침 햇살에 눈이 아찔하면서 겨우 집에 돌아오자마자 힘이 다하여 침대에 쓰러졌다.
오늘 쉬는 날이라 다행이다….
단지 그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잠에 깊이 빠져들었다.


삐삐삐♪삐삐삐♪

지금 몇시지….
착신을 알리는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상대방과 동시에 시각을 확인한다.
16시 44분.
무슨 괴로운 짓거리야, 이 시각은….
아무래도 휴대전화가 알려온 것은 문자 같았다.
업무용과 개인용 두 개의 휴대전화.
울린 쪽은 개인용.
보낸 사람은 유이.
유이가 내 개인용 전화번호를 아는 것은 마담과 가게에는 말하지 않았다.
이것도 어쩌면 룰 위반이 될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이미 가게에 머무를 자격을 잃은 것이다.
그러니 말할 수가 없다.

"오늘 밤 시간 비나요…?"

유이가 존댓말을 쓰다니 드문 일이었다.
이모티콘도 없고 그저 그뿐인 글.
내 마음 속에서 다양한 생각과 억측이 엇갈린다.

"비어요"

하지만 나는 그 말만 돌려보낸다.
무슨 일이 있는지는 뒤에 들으면 된다.
게다가 이런 문자를 보내오면 대체적인 추측은 할 수 있다.
아니나다를까, 유이의 답장은 조금 시간을 두고 왔다.

"다행이다. 그럼 19시에 서쪽 고디바 앞에서 만나도 괜찮을까요?"

글만 봐서는 별로 전해지지 않지만, 아마 몇 번 썼다 지웠다 반복해서 이런 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OK!"라고만 치고 바로 답장을 보낸다.



매장에서 넘친 초콜릿 향기가 나를 감싼다.
마치 초콜릿 퐁규 속에서 나도 함께 녹는 듯한 지복.
감미로움에 녹았다. 내 표정은 황홀했는지도 모른다.
도회지 한복판에서 황홀경에 빠진 여자라.
유이도 참 사람이 못됐다.
그런 나를 재미있다고 한동안 그냥 내버려 두었다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초조해하면서 정말이지….

「기왕이면 초콜릿 사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됐어요. 그런 거 좋아하지도 않고…」

그래서 나는 유이에게는 별로 어울리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서만 발을 놀렸다.

「거기 왼쪽」

유이의 집으로 가는 길인데 앞서 가는 나를 유이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
나도 이제 한 발 늦추어 유이와 함께 걸어야 하는데,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의 일을 상상해 버릴 것 같아 무서워서, 나는 조금만 앞을 걷고 가급적 그 때까지는 유이의 모습을 시야에 넣지 않으려 했다.

「여기」

아무래도 도착한 듯하다.
극히 보통의 아파트. 유이의 방은 이층 가장 남쪽.
안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고 인테리어는 말 그대로 여자의 방이라는 느낌이 든다.
침대에는 키티가 그려진 다키마쿠라. 벽에는 아이돌 가수의 포스터.
바닥에는 패션잡지와 좀 큰 소리로 말할 수 없을 성인 잡지가 몇 종류.
내가 무의식 중에 방안을 뜯어보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냉장고에서 과일소주 캔을 두 개 꺼내 탁자에 놓고 그 중 하나를 내게 권한 뒤 자기도 푸슉 경쾌한 소리를 내며 캔을 따고 꿀꺽꿀꺽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빨리도 한 캔째를 비워버렸다.

「갑자기 술…?」
「안주도 있어.
아, 배고프면 뭐 만들 수도 있고」
「응, 그건 괜찮은데…」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었지만, 유이는 이미 취기가 돌기 시작했는지 가게에서 항상 보던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기에, 나도 내가 졌다며 포기하고 조금씩 술을 몸 속으로 넘겨갔다.

「유메쨩…」
「응?」
「마담한테 들었어…?」

유이가 언제 이 얘기를 꺼낼까 벌써 두 시간은 기다렸다.
그 사이 우리에게는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어쨌든 이제 여러가지 일이 있었고 그 결과 우리는 지금 둘이서 침대에 누웠다.

「…들었어요」

드디어인가.
유이가 내 쪽을 향한 채 내 얼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내지 못하고 내 시선은 계속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일 유이가 고백해도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다.
내가 유메로 있는 한 유이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다고.
그 말을 전하러 나는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그럼…. 이제, 됐지…?」

그렇게 말하자 유이는 내 몸에 팔을 두르고 아플 정도로 나를 껴안았다.

「유이…?」

「이제 나 더이상 못 참아….
내 기분 더 못 숨기겠으니까….
유메쨩이 좋으니까….
그러니까 유메쨩 좋을 대로 해도 좋아…」

유이는 아마 내 인새에서 처음으로 나를 정면에서 좋아해준 사람.
처음으로 나를 아무 의심 없이 여자로 보아준 사람.
물론 처음에는 뉴하프 유메와 손님 유이의 관계였다.
하지만 유이가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털어놓은 날부터 우리의 관계는 조금씩 달라졌다.
나는 아직 유이에게 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말해 버리면 이제 아무것도 막는 것은 없고 멈춰 버릴 필요도 없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내 안의 유메와 나기사가 갈등한다.
지금은 아직 나는 유메.
그러니 나는 나기사를 억누르고 유이에 대한 마음을 끊었다.

「저기…. 유이…. 그런 건…」

「알아. 안 된다는 거 알아.
하지만 더이상 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으니까…」

나는 일단 유이의 팔을 풀고 몸을 일으키면서 침착하게 말해달라 부탁했다.

「미안…. 안 돼요. 그런 건…」
「마담한테 들키지만 않으면…」
「안 돼요…」
「역시 내가 손님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응…. 유이는 손님이야…. 손님이니까…」

유이를 생각해서 확실히 말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거기까지 말하자 유이는 알아준 듯했다.
일으킨 몸을 다시 눕히자 엎드린 채 조그만 오열이 새어나왔다.

「미안해…. 유이, 울지 말아요…」

대답이 없다.
아무리 말을 걸어도, 어깨에 손을 얹어도 들리는 것은 이를 악문 듯 계속 우는 목소리 뿐.
나는 유이의 머리를 조금 들어올려 얼굴을 보기 위해 내 얼굴을 가까이 댔다.

그 순간.
지금까지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던 유이의 몸이 나를 감싸며 움직이고,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혼란한 내 입술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러나 가늘게 떨리는 유이의 입술이 겹쳐졌다.
그런 유이에게 나는 점차 자신을 잊어가는 자신을 느꼈다.
빨듯이 핥듯이 어루만지듯이 강하게 상냥하게 한숨을 흘리면서.
유이의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내 이성은 조금씩 빨려들어 갔다.
그리고 내가 유이를 끌어안고 체위를 역전시킨 뒤에는 다시 일방적이었다.
내 키스에 뺨을 붉히고 내 애무에 온몸에 홍조를 띠었다.
집요하게 유두를 몰아붙이자 내 손을 잡으며 괴롭게 바둥바둥거리고
상냥하게 음부를 사랑해 주자 귀여운 목소리로 울었다.
애태우며 조금씩 쾌락의 소용돌이로 이끌어 가면 솔직히 그것을 받아들이고
내가 이끄는 대로 격렬히 몸을 떨고, 끝없이 흐르는 달콤하게 음란한 향을 뿌리며 유이는 절정에 달했다.

그런 꿈의 시간.
지쳐서 잠들어 버린 유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마치 악몽.
아니, 진짜 악몽은 이제부터 시작인 것….
아무리 유이가 덮쳐온 것이라 해도, 결국 나는 유이와 관계를 하고 말았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될까….
우선 마담에게 말해야 할까….
좌우간 마음이 무겁다….
격렬히 움직여서인지 목도 말라온다….
나는 갈증만이라도 해소하고 어떻게든 기분을 바꾸려고 조용한 숨소리를 내는 유이를 남겨두고 부엌으로 갔다.

꿀꺽꿀꺽꿀꺽…

스스로 놀랄 만큼 목이 울린다.
한 잔 만으로는 갈증이 해소되지 않고 두 잔, 이것이 벌써 세 잔째였다.

「하아…」

싱크대 가장자리에 손을 얹고 몸을 떨어뜨린다.
마음은 계속 추락하고 있다.
나도 유이가 좋다. 유이를 사랑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작은 행복마저 유메라는 캐릭터가 허하지 아니한다.
진짜 나와 가짜 나. 실상이 허상에게 지배당하려 하는 나.
나기사가 유이를 그릴수록 유메가 유이를 멀리한다.
그것은 내 마음 속어 어둑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건드려서는 안 될 부분마저 침범한다.
여자가 되고 싶은, 그러나 남자로서 살았던 나날
여자가 여자로서 살 수 없다면 차라리 목숨을 끊겠다 생각한 나날들
싱크대 안에는 아직 씻지 않은 식기와 조리도구들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다.
문득 그 안에서 둔한 은빛으로 빛나는 물건을 발견하고 나는 그것을 천천히 집었다.

두근……두근…두근

서서히 심박수가 늘어남을 스스로도 알 수 있다.
그것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을 하기 위한 도구인지 스스로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니까.
그것은 사용법을 잘못하면 흉기로 변하는 위험한 물건.
그 날끝을 계속 바라보고 움직이지 않는 자신을 어디선가 냉정하게 바라보는 자신이 있다.
잡는 방법을 바꾸어 날끝을 내 쪽으로 향했다.
배에 대었다가 거기서 덮어쓰듯 위로 심장을 지나 목덜미로.
어디가 가장 좋을까….
목에서 이번에는 아래로, 아까 지나온 길을 다시 지나 배로.
그 짓을 몇 번 되풀이했다. 그러나 공포는 전혀 없다.
무언가 과감히 버려야 할 때는 의외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왠지 그렇게 납득한 나는 각오를 정한 듯 눈을 감고 목에 칼을 대고 마음 속에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5…



4…



3…



2…



1…









「나기사!」

내게 몸을 덮쳐온 유이는 왼손으로 식칼을 쥐고 오른손으로 내 손을 칼과 떼어놓고 내게서 칼을 빼앗자 그 자리에 푹 쓰러졌다.

「바보야! 무슨 짓 하려는 거야…!」

유이는 왼손을 누르고 통증을 참으며 나를 나무랐다.
이미 바닥은 유이에게서 흘러나온 것으로 붉게 물들었고, 그 상처의 깊이를 그로 짐작할 수 있었다.

「구급차… 불러줘…」

내게 도움을 청하는 유이의 모습에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수화기를 들었다.
전화를 걸고 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유이를 격려하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웃긴 말이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된 유이를 내가 격려한다니….

다행이 병원이 가깝기도 했고 구급차는 금방 왔다.
병원에 후송된 뒤 곧 상처를 꿰매고 어떻게든 무사히 병실에서 나온 유이는 왼손에 붕대를 감고 애처로운 모습이었는데 그것 이외에는 기운이 넘쳐 나도 안심했다.

유이는 더이상 나를 나무라지는 않았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그런 것은 일절 묻지 않았다.
다만 한 마디, 미안해. 라고 내게 사과했다.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내 쪽인데….
그래서 나도 미안해. 라며 유이를 껴안았다.
싸늘한 유이의 뺨에 내 뺨을 대고 키스가 아니라 순수하게 이 온기를 전하려고.


그리고 며칠 후.
우리는 둘이서 개점 전의 가게를 찾았다.
마담과 셋이 평소에는 술이나 안주와 과일로 수놓는 테이블에 마주앉아 내 입으로 일의 자초지종을 마담에게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혜를 헛되게 한 것과 심려를 끼친 것을 사과하고 내가 저지른 짓은 스스로 책임을 질 테니 가게를 그만두겠다 고했다. 마담은 여러 차례 나를 잃는 것은 슬프다 했지만 가게의 규칙이니까. 라며 결국은 내 요구를 들어주었다.
이제 여기 올 일은 없다고 생각하면 유메로서의 마지막 날은 조금 섭섭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나도 마담도 또 보자는 약속을 할 수는 없었다.
옆에는 유이가 있어서 이렇게 따뜻하건만 등이 조금 춥다.
지금까지 그곳에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줄 알았던 것이 없어지면 이런 기분인 건가.
나는 무언가 하나 배운 듯한, 관조하는 마음으로 유이의 오른손을 꽉 잡고 놓지 않고 밤거리를 걸었다.


***


가끔 이렇게 나는 떠올린다.
유이의 왼손에 새겨진 우리의 흔적을.
그리고 그때마다 그 기억을 씻도록 눈물이 내 뺨을 타고 내린다.

「나기사…?」
「…좋은 아침」
「좋은 아침…. 울었어?」
「미안. 아무 것도 아니야」

나는 유이의 왼손을 잡은 채 이불에 기어들어간다.

「뭐야…? 왜 그래…?」

아직 잠에서 덜 깬 눈의 유이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 상관 없이 유이의 베개를 절반 차지하고 유이를 향해 함께 누웠다.

「여기 있어도 돼?」
「응. 되는데 왜」

그것만이 내 바램.
유이의 손의 흉터는 어쩌면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둘이서 여러가지를 쌓아 가면 마음의 흉터는 좋은 추억이 된다.
깔끔하게 둘로 나뉜 세계는 너무 살기 힘들지만, 그런 이분된 세계 속에서도 나는 유이만은 놓치지 않고 계속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 분명히 밝은 쪽으로 쓰러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까….
창문을 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조금 쓸쓸하여, 나는 조용히 유이의 어깨를 감쌌다.


-Fin-










원작 http://novel18.syosetu.com/n6446o/9/

이하 역자의 말:
본 번역은 원저자의 허락을 구하고 번역한 에반게리온 팬픽 『신지*3』와 달리 원저자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해적번역입니다. 저작물에 대한 모든 권리는 작가 우사미 타쿠토(宇佐美拓都)에게 있으며, 본 소설을 상업적 용도를 비롯한 기타 의도로 이용할 권리는 독자 뿐 아니라 역자인 제게도 없습니다.

아니 성소수자 정병 원래 다들 개쩔지만 섹스 직후에 피뿌리고 자살하면 이따 일어난 사람은 뭐가 되겠냐거 ㅇ血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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