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8일 토요일

[번역] Identity -5-




침대가 넓다. 방이 넓다.
천장이 높다. 구름도 높다.
냉장고의 웅웅 소리가 멀리서 느껴지고, 창 밖의 소란이 멀리서 느껴진다.
빈 마음을 채울 것을 요구하여 집안을 뒤지고 뒤지느라 피곤해 누운 더블베드 위. 닥쳐오는 불안과 허무를 견디지 못하고 휴대폰 주소록을 열어 보았지만 그렇게 금방 누군가에게 기대려 하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에 즉시 휴대폰을 내렸다.
유이가 없는 밤은 과거에도 있었기 때문에 어제는 딱히 아무 일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날이 밝아 2일째가 된 순간 이 1주일이나 되는 골든위크를 어떻게 넘겨야 할 것인가 막막해졌다.
어쨌든 기분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는 밖에서 점심이나 먹으려고 집을 나섰다.

낯익은 아파트 복도도 계단도 입구도 걷는 것이 익숙한 골목길도 마음에 드는 가게 앞의 길도 왠지 오늘은 조금 조용해 외로뭄을 느낀다.
그것이 자신의 마음 때문이라고, 곁에 있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래도 딱 그만큼의 문제가 내 눈에 보이는 거리 풍경을 흑백의 무채색 세계로 만들었다.

그런 색깔도 냄새도 소리도 없는 세계를 방황하는 나.
행선지를 아는 것은 아까부터 부지런하게 계속 움직이는 이 두 다리 뿐.
어디를 가도 어디까지 가도 내게는 모두 같은 경치.

「어머, 유메쨩?」

그 목소리가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되찾아 준다.
분홍색 같은 보라색 같은 검은색 같은 담배와 술에 탄 목소리.
그리움을 느낌과 함께 자신이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를 이해하고 자신의 무의식에 두려움을 느낀다.

「어쩐 일이야?」
「……에미씨」

유메라는 이름으로 일하던 가게 『아카네』. 유이와 몰래 만나기 전까지 유일하게 내가 나로서 살았던 곳.
처음에는 그저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사람끼리 어깨를 붙이고 위로하던 것뿐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세계가 모두였다. 이 장소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면 안 된다고 약속했잖아」
「네. 저… 그럴 생각은 아니……」

나는 금기를 범했다.
손님이던 유이를 좋아하게 되어서, 유이와 관계하고 말았다.
그것은 이 가게에서 허용되지 않는 것. 그래서 나는 계약 위반이라는 형태로 가게를 그만두었다.
No.1이던 내가 그만두는 것은 가게에있어서도 상당히 뼈아팠던 것 같기에 남을 수 있도록 애써 준 동료들도 있었지만, 결국 나는 가게보다 유이를 택했다.
그래서 내가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룰을 지키지 못한 이상.

「지나가던 길일 뿐이었어요….
실례했습니다… 저쪽 길에서 돌아 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 그럼 불러세워 미안했어…」

「아녜요… 그럼…」

대화의 마지막 말에 「또 봐요」라는 말을 붙이려다 말았다.
또 보다니 그런 게 될 리가 있나. 그래놓고 다음을 생각하는 나도 참 팔자도 좋다.

에미씨의 시선을 아프게 느꼈지만 그 이상 눈을 맞출 용기도 없었던 나는 도망치듯 떠났다. 그리고 어디로 목적도 없이 다시 거리를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얼마나 걸었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여기는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동네가 아니다.
스스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상당한 거리를 걸어온 것일까.
멈추지 않고 계속 걸은 다리는 붓고, 구두 속의 발은 구두에 쓸리어 까진 듯 통증이 퍼져갔다. 일어난 뒤 아무것도 입에 넣지 않은 내 배는 비명을 지르며 기진맥진했다. 눈은 나른해졌지만 그런 자신을 냉정히 바라보고 있는 자신이 어느새 구원의 손길을 뻗치고 있었다.
모르는 동네의 아는 가게.
프랜차이즈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점.
들어가자 맞아주던 점원이 「한 분이세요?」 묻고 나는 「네」라고 대답했다.

「두 명이에요」
「그럼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이해를 못하고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데 점원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선도한다.
영문을 모르고 목소리도 안 나와 적어도 그 얼굴만이라도 보자고 눈길을 위로 들려 했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런 나의 시선을 아래로 처박듯이 강하게 팔을 잡고 그대로 잡혀서 균형을 잃은 나는 앞으로 구부정한 채 질질 끌려가서 자리에 앉고 말았다.

「무슨 짓이에요…」
「이쪽이 할 대사야」

마주앉은 그 사람의 모습에 나는 말문이 막혀 입가를 손으로 감싼 채 잠시 움직일 수 없었다.

「갑자기 얼굴을 내밀었나 싶었더니 바로 가 버리고,
그래서 뒤쫓아 왔더니 이런 데까지 비실비실…
게다가 그 얼굴 꼴은 뭐야. 지독한 것도 정도가 있다고, 정말이지」

「에… 어째서…?」

「어째서고 뭐고 할 것도 없고, 뭣 때문에 그렇게 울 것 같은 면상이야」

「그야……」

아마 틀림없이, 아니 확실히 절대, 내가 가게를 그만두어 가장 귀찮아져 버린 사람.
은혜를 원수로 갚았음을 나는 지금도 후회했다.

「에미가 뭐라고 말했는지는 모르겠다만,
가게까지 와서 마담인 나한테 인사가 없다니 너무 서운하잖아?」

「하지만… 저는……」

「유메를 그만두게 하지 않으면 다른 애들한테 본보기가 안 되었어.
뭐 그래도 No.1이었던 건 사실이고, 솔직히 유메가 없어진 뒤로는 힘들어.
게다가 넌 참 착한 애라서. 지금도 너는 정말 마음에 들거든」

「……마담」

여기가 어딘지도 잊고 흐느끼는 내 머리를 마담은 가볍게 쓸어내렸다.

「돌아가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담의 손을 잡고 패밀리 레스토랑을 나왔다.
그리고 마담과 함께 전철을 타고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내려 다시 10분 정도 걸어갔다.
모르는 동네에서 모르는 동네로. 여기가 어디인지 이제 나는 알 수 없다.
아는 것은 지금 앉아있는 이곳이 마담의 방이라는 것 뿐이다.
그리고…….
마담의 손이 내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내 몸이 마담의 팔 안에.
침대에 뉘이고 점차 마담의 손가락 사용도 그럴듯해진다.
마담의 말에 하나씩 사슬을 풀고 갑옷을 벗어
마담의 손이 나를 덮고 있는 것을을 하나씩 떼어낸다.

「정말 이걸로 괜찮아?」
「엣……?」

나를 가리고 있는 것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나도 이제 각오는 했기 때문에 마담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너 최저의 여자구나」

마담은 나를 내버려두고 일어서서 창문을 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최저일 지도 모른다.
애인이 고향집에 돌아가 불안과 외로움에 제정신을 잃고 거리를 배회하다 마담에게 붙잡혀서…….
만약 마담이 그대로 손을 멈추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만약 그것을 유이가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나는 하마터면 유이를 배반할 뻔 했다.
마담은 그것을 일깨우고 내 마음을 현실로 되돌려 주었다.
역시 이 사람에게는 당할 수가 없다….

「돌아가라. 역까지는 바래다줄 테니까」
「…네」

나는 벗겨진 옷을 입고, 하지만 사슬과 갑옷은 이 방에 남겨두고, 마담이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맞추어 준비를 끝냈다.

「괜찮겠냐. 라고 말해도 또 돌아오면 그때는 정말 모르는 거다.」
「네. 이제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럼 잘 지내라」

마담은 나를 역전에 내려놓고 다시 분홍색과 보라색과 검은색이 섞인 세계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뒷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지켜본 나 역시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로 돌아갔다.


***


「다녀왔어―……」

대답은 없다. 당연하다. 유이는 아직 고향집에 가 있으니까.

「후」하고 「하아」 한숨을 내쉬고 나는 침대에 쓰러진다.
그리고 하루종일 방치해 둔 핸드폰을 열자 예상대로 수십 건의 연속 부재중 전화와 문자를 남긴 상대에게 답신을 보낸다.

「여보세요……?」
「너 정말! 이제 일어난 거야!?」
「응. 미안, 유이.」
「정말이지…. 혼자 있어서 우울하지는 않고?」
「응. 저기 있지…」

전화 너머지만 그 목소리는 나에게 진짜 색채를 찾아준다. 그 목소리를 들을 뿐인데도 텅 비어 있던 내 안은 충족됨을 느낀다.
그리고 차츰 체온이 올라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천천히 오늘 일을 유이에게 이야기했다.










원작 http://novel18.syosetu.com/n6446o/5/

이하 역자의 말:
본 번역은 원저자의 허락을 구하고 번역한 에반게리온 팬픽 『신지*3』와 달리 원저자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해적번역입니다. 저작물에 대한 모든 권리는 작가 우사미 타쿠토(宇佐美拓都)에게 있으며, 본 소설을 상업적 용도를 비롯한 기타 의도로 이용할 권리는 독자 뿐 아니라 역자인 제게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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