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8일 토요일

[번역] Identity -4-


「모퉁이 서점을 돌아서 두 번째 신호에서 우회전해서 약국 옆의 아파트라고?」
「응, 맞아. 모르겠으면 다시 전화해요」
「아아, 알았다」

후우….
한숨이 나온다.
가장 최근에 귀향한 것이 나기사와 동거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만나는 것은 이게 대략 2년 반만이다.
가끔 전화로 목소리는 들었지만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면 역시 되면 역시 태도를 꾸며내게 된다.
게다가 그 장소는 우리가 사는 이 집.
나기사는 아직 직장에서 돌아오지 않았기에, 아버지가 도착하면 어딘가로 데려가든가 해야겠다 생각했다.
최대한 나기사는 만나게 하고 싶지 않다.
만나면 당연히 여러가지 설명이 필요해지니까….


「다녀왔어―」

현실은 그런 것이다.
내 생각대로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은 없고….

「어서 와」

그래도 어서 오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는 없고, 이제 와서 다시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처럼 그렇게 말하는 것뿐이었다.

「유이∼ 저녁 뭐야∼?」

냉장고에서 자리끼 생수를 꺼내면서 나기사가 묻는다.

「그게 말인데….
아버지가 와서 밖에서 같이 먹어야 할 거 같아서, 오늘은 혼자 먹어야 할 거 같아」
「엣? 아버님이 오셔?」
「응, 출장 때문에」
「그렇구나… 하긴 부모자식끼리 만나는데 내가 끼면 이상하지」

부모자식끼리. 나도 사실 그런 시간을 소중히 하고 싶지만, 솔직히 지금은 부모도 가족도 친척도 만나고 싶지 않다.
가족이란 절대적 이해자여야 하겠지만, 나는 거짓말을 하고 살아야 한다.
나기사라는 여자를 사랑하는 동성애자의 모습을 숨기고….


띵동


「아, 도착했나봐」

나는 나기사의 모습이 최대한 보이지 않도록 현관 문을 조금만 열어 아버지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밖에서 기다리다 지쳐서 문을 열어버리기 전에 재빨리 준비를 갖췄다.

「그럼 갔다 올게」
「다녀오셔―요」

나기사는 1인분의 무언가를 프라이팬 위에 볶고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다녀오라는 목소리도 모두 듣기 전에 나는 집을 나섰다.


***


아버지.
내게는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없다….

라고 해야 할지, 별로 부럽지는 않지만, 유이는 아버지를 소중히 여겨 주었으면.
부모 자식 간의 오붓한 식사인데 왜 유이는 그렇게 어두운 표정을 한 걸까….
내가 아직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하기 전 같은 얼굴.
어쩌면 유이는 아직 부모님을 비롯해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는가?
나는 냉장고를 열어 언젠가 유이가 사놓고는 방치해 놓고 있던 과일소주 캔을 3개 모두 꺼내 술을 힘을 빌려 그런 귀찮은 억측을 지우려고 했다.

평소에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탓도 있고, 1캔째에 벌써 취기가 돌며 기분이 좋아졌다.
모처럼 직접 만든 식사도 먹고 싶지 않아져 술만 퍼마신다.

「너 따위가 나에 대해 뭘 안다는 거야!!」

TV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여배우의 감정적인 대사를 안주 삼아 2캔째도 순식간에 비우고, 3캔째를 가지러 식탁으로 향한다. 하지만 발밑이 벌써 노래져 버려, 소파에서 일어났다가 주저앉고 그대로 바닥 카펫 위에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려고 애써 소파에 손을 걸었던 지즘에서 의식을 상실, 그 뒤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 보니 유이는 돌아와서 내가 꺼내놓은 과일소주를 마시고 있고 나는 소파에 앉은 유이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다.

「안녕 새끼고양이」

뭐야. 유이가 아니잖아….
무릎베게를 밀어젖히고 벌떡 일어나자 유이는 내게 놀란 것처럼 보였다.

「나기사…?」

유이는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를 새끼고양이라느니 부르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 기본적으로 내가 타치(タチ; 속칭 공)이고 유이가 고양이(ネコ; 속칭 수)니까 더욱 거부감을 느꼈다.

「미안… 그럴 기분 아니야」

하지만 내 모습은 그야말로 주인에게 억지로 귀여움받는 게 귀찮아서 노려보는 고양이 같았나 보다.

「그냥 말해본 것 뿐이야」

그럴 기분 아니라고 해놓고 유이의 무릎베게는 기분이 좋아서 나는 그대로 유이에게 쓰러져서 허벅지의 감촉을 뺨으로 만끽했다.

「간지러워, 나기사.
그런데 그 자세 불편하지 않아?」
「기분 좋아아∼」

적당히 취기가 돌고 달뜬 몸과 유이의 부드러운 허벅지는 묘하게 상성이 좋아, 정말 기분 좋았다.


***


그런 표정을 지으면 말을 꺼낼 수가 없잖아….
게다가 항상 마시지 않던 술을 혼자 마시고. 내가 아버지와 있었기 때문이 분명하고, 그 아버지는 지금 내 방에서 자고 있다. 아버지에게 집에 한번 들어오라고 했다니. 이렇게 기분 좋고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기사에게 그런 말을 꺼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나기사가 일어나서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보다 큰 그 몸을 항상 열심히 동침하는 더블베드로 실어 옮겼다. 그러나 나도 지쳤으니 나기사의 옆에 뒹굴었다. 정신이 들어 보니 치는 것을 잊은 커튼에서 황황히 아침 해가 쏟아지고 있고 역시 잠그는 것을 잊고 있던 문 너머에서 아버지가 일어난 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났어요」
「일어났다」
「이제 일하러 가는 거냐? 밥은?」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르니까 괜찮아」

극히 보통의 부녀의 아침 대화.
하지만 아버지는 나와 눈을 맞추지 못하고 뭔가 말하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걸 물어볼 용기도 없다. 아버지도 좀처럼 말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고. 결국 일이 벌어진 것은 아버지가 현관문 문고리에 손을 올렸을 때였다.

「그… 너희들은 항상 저렇게 자는 거냐…」
「에?」
「각자 방이 있는데 같이 자는 거냐?」

나는 이제야 문을 열어 놓고 잠들었음을 후회했다.
아버지는 먼저 일어나서 내가 일어났는지 깨우러 온 것일까….
그러다 반쯤 열린 문에서 함께 자고 있는 우리를 보아 버린 건가….

「아니… 그건…」

아버지가 내 방 침대에서 잤잖아, 그래서 그 침대에서 잤어.
그렇게 변명을 하면 조금이라도 속여넘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아버지의 다음 말은 그 변명을 할까말까 망설이던 나의 마음을 후비고 갔다.

「너도 이제 성인이니까, 정도껏 한다면 이러쿵저러쿵 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렇다고 분명히 말해. 알겠냐?」
「…응」
「그럼 나는 간다」

문이 닫히자 나는 주저앉았다.
안 된다. 더이상은 피할 수 없다.
내가 조금 심상치 않다는 것은 아직 집에 있을 시절부터 부모 모두 알고 있었다.
알고 있음을 나도 알고 있었고 그래도 서로 그 이야기를 꺼내서 파문을 일으키는 일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떨어져 살게 되면서 조금 변했는지도 모른다.
떨어져 살게 되면서 말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아마 그것도 그 많아진 것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현장을 덮쳐 버린 것으로 아버지의 결심이 서 버린 것이다.
그러니 나도 각오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나기사는 아직 기분 좋게 꿈 속. 하지만 오늘만은 나도 귀신이 되어 현실과 악몽을 보여 주는 수밖에 없다.

나기사의 머리는 졸음과 약간의 숙취로 멍해져 있었다.
억지로 일으켜서 의자에 앉힌 뒤 엄한 얼굴의 유이를 마주하고
눈 앞에 물 한 컵을 내밀면서 마시고 눈 뜨라는 말에
나기사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뭐야아―…」
「중요한 이야기를 할 거야. 제대로 들어」
「지금 아니면 안 돼…?」
「안 돼」

짜증을 부리면서도 물을 입에 달고 앞머리를 고무로 묶어 놓자 유이의 말을 기다리기보다 나기사는 언짢은 듯한 태도로 자기 얘기부터 했다.

「뭔데?」
「잠깐 고향집에 다녀올 거야」
「뭐하러?」
「어제 아버지 때문에」
「언제 가?」
「골든위크 때려나」
「얼마나?」
「1주일 정도 잡고 있어. 짧아도 3일…」
「그러냐…」

거기까지 들은 나기사는 고개를 들어 한번 허공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힘이 빠진 듯 떨구었다. 그러면서도 강하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다시 유이에게 물었다.

「뭔가 말하기 거북한 말이라도 하러 가는 거?」
「아마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해」
「왜 이제 와서 일부러 그런 짓 하러 가. 지금 이대로 괜찮잖아」

유이는 탁자에 팔꿈치를 짚은 채 앞으로 구부리고 머리를 싸맸다.

「말하면… 가정이 파탄날 지도 모른다고…」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됐으니까…」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피한다는 표현을 쓰는 것에 유이는 괴로움을 느꼈다.
자기 마음에 거짓말을 해야 하나, 가족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나.
신세로 대답은 나올 리 없음에, 선택에 박차를 가하자면 역시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

「어젯밤에 나기사를 침대로 옮기고 나도 거기서 잤어.
근데 오늘 아침에 아버지가 그걸 봤고….
일단 그 자리에선 속이려고 했지만 아마 앞으론 무리…」
「굳이 가지 않아도 괜찮잖아? 전화나 문자로도」
「그것과 이건 사실은 다른 이야기였지만…
어차피 돌아가면 무슨 말을 하러 왔는지 알 테니까…」
「그런가…」

나기사는 남은 물을 비우고 일어서 유이의 등 뒤로 돌아 의자째로 유이를 껴안았다.

「무사히 돌아와야 해. 그것만 약속해…」

그 말만 하고 나기사는 유이를 두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찰칵 열쇠 잠기는 소리가 나더니 그 다음에 다시 열쇠 소리가 들린 밤 10시경까지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나기사의 모습을 항상 걱정했던 유이도 이번만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유이 자신의 일로 머리가 가득하여 나기사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도 했지만, 이야기가 이야기인 만큼 지나치게 몰아붙이거나 생각하게 하면 나쁜 방향으로 치달을까 불안하기도 했다.
나기사가 방에서 나온 뒤에도 두 사람 사이에 대화는 전혀 없었다. 어느 쪽도 항상 사용하던 더블베드에서 자지 않고 그날 밤은 반 년 만에 각방에서 따로 침대에서 잤다. 정신을 차리면 그대로 아침이 되어 있었다.


***


「그럼 다녀올게….」
「잘 다녀와…」

골든위크 첫날.
그날 이후 그 화제는 더이상 꺼내지 못한 채 약속대로 유이는 고향집으로 돌아갔다.










원작 http://novel18.syosetu.com/n6446o/4/

이하 역자의 말:
본 번역은 원저자의 허락을 구하고 번역한 에반게리온 팬픽 『신지*3』와 달리 원저자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해적번역입니다. 저작물에 대한 모든 권리는 작가 우사미 타쿠토(宇佐美拓都)에게 있으며, 본 소설을 상업적 용도를 비롯한 기타 의도로 이용할 권리는 독자 뿐 아니라 역자인 제게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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