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0일 화요일

[횡설수설] 부끄러움

사흘 전, 나라를 먹여살린다는 기업의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

하루가 지나고, 경찰은 고인의 유해가 소재한 병원으로 출동하여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려가며 유해를 "탈취"했다.

다시 하루가 지나고, 학교에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 앞에는 촛대가 세워지고 향불이 피워졌다.

분노할 내용이었다. 치가 떨리고 손이 떨렸다.

향불 한대 피우려 앞으로 다가갔다가, 펼쳐진 방명록을 보고 걸음이 멈추었다.

앞뒤로 넘겨 보았다. 겨우 한 페이지, 네 개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뉴스에서 본 낯익은 이름도 있었다.

내 손 앞, 불과 10cm 앞에 네임펜이 놓여져 있었는데, 나는 펜을 집어들지 못했다.

다시 하루가 지나서 오늘이 되었다.


대자보 앞에 다시 가 보았다. 양초 하나가 다 타고 촛농만 남았다. 방명록은 대여섯 페이지가 더 쓰였다. 나는 네임펜을 들어 이름을 갈겨썼다.

뒤돌아서 과학철학 강의를 들으러 가는 길, 나는 강렬한 자기혐오에 휩싸였다.

왜 나는 어제 방명록에 서명을 남기지 못했나.

어째서 나는 하루를 기다려야 했나.

어째서 나는 양초 하나가 다 타는 동안 기다려야 했나.

어째서 나는 방명록이 대여섯 페이지 앞서 쓰여지기를 기다려야 했나.

어째서 나는 세상을 증오하기만 할 뿐, 세상이 변하라는 가냘픈 몸짓에 고작 이름 석자 자신있게 보태지 못했나.

아 나는 쓰레기다. 산 채로 썩어가는 시체다. 부패로 발생하는 온기 속에 안주하는 구더기다.
이 얼마나 가증스러우냐.

"엄마 아버지도 노동자라고요. 억울한 일 당하면 자기 앞가림 다 자기가 해야지, 나랏님이 뭐라도 해줄 줄 알아요? 정신 좀 차려요"라고 말하던 얼치기 대학생은 얄팍한 방명록 앞에서 어째서 그렇게 작아진 것인가.

농민 출신(조부모)의 소시민(부모)이라는 출신성분을 부끄러워하던 얼치기 대학생은 어째서 그렇게 작아진 것인가.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댓글 3개:

  1. 저도 이런종류의 자기혐오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도덕적인 행동도 경험을 통한 학습이 있을때 실천하기 쉬워진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왠지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경험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자기합리화를 할 수 있어서 였겠지요. 비록 합리화더라도 더 괜찮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편이 좋죠.

    답글삭제
  2. 이런 자기혐오를 하는 사람들이 이곳엔 얼마나 많을까요. 이런 자기혐오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곳엔 얼마나 많을까요.

    답글삭제
  3. 자기혐오도 반성도 좋지만 이것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면 정신적으로 힘들어 지더군요.
    그래서 저는 요즘 자기혐오와 반성을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는 것도 생각하는 중입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