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9일 월요일

[키네마 크로키] 스플라이스 - 불온한 질문을 싸고도는 바다뱀

경고: 스포일러 및 변태돋긔. 19금 영화의 리뷰입니다.

인간을 복제한다 함은 무엇인가? 과학적인 의미에서 사용되는 인간 복제(human cloning)란, 어떤 인간과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체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허나 이것은 상당히 좁은 정의이면서 동시에 유전공학 분야에 한정된 특수한 의미라 하겠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적으로 동일하나 그들이 ‘복제’되었다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다 광의의, 보편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인간 복제’란, 단순히 ‘인간(또는 그와 유사한 무언가)을 만들어내는 행위’라 할 것이며, 이 정의를 앞으로 본 글의 논의에서 사용하고자 한다.

‘인간 복제’가 ‘인간을 만들어내는 행위’라면, 무엇이 인간이고, 또 어디까지가 인간인지를 규정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허나 이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며, 어쩌면 푸는 것이 불가능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인간 복제’라는 테마의 핵심에는 인간의 정체성과 그에 대한 의문․도전․혼란이 잠재되어 소용돌이치고 있다. 그리고 그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불안해지는 순간, 인간은 공포를 느끼게 되기 마련이다.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에서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거쳐 시로 마사무네의 《공각기동대》에 이르기까지 “인간 복제”라는 테마를 다루는 작품들 중 불온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많은 것은 이러한 점에 기인하는 바라 하겠다.

캐나다의 빈센조 나탈리가 감독한 2010년 SF 영화 《스플라이스》는 제목(Splice; 유전자 접합)에서부터 드러나듯 생명공학을 소재로 삼고 있다. 영화에서 주요하게 등장하는 인물은 세 명, 유전공학자인 ‘엘사’와 ‘클라이브’, 그들이 창조해낸 유사인간인 ‘드렌’이다.

줄거리를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엘사와 클라이브는 여러 동물의 유전자와 인간의 유전자까지 섞은 뒤 인간 난자에 이식, 인공자궁에서 성장시켜 ‘새로운 생명체’인 드렌을 만들어낸다. 드렌은 성장할수록 인간 여성의 모습에 가까워지고, 클라이브는 드렌에게 유혹당해 드렌과 성관계를 가진다. 이 광경을 목격한 엘사와 그것을 들킨 클라이브 모두 충격에 빠져 드렌을 처치하고자 하나, 드렌은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고 둘은 드렌을 매장한다. 그러나 사실 드렌은 죽은 것이 아니었고, 수컷으로 성전환하여 다시 나타난다. 드렌은 엘사와 클라이브를 쫓아온 연구소 직원들을 몰살시키고 엘사를 강간한다. 클라이브와 엘사는 사력을 다해 드렌을 죽이나, 드렌은 마지막으로 클라이브에게 독침을 놓아 그를 죽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제약회사의 사장과 계약서를 작성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엘사가 만삭의 몸임이 드러나며 영화가 끝난다.

이 영화는 인간 복제라는 테마를 다루고 있음이 명백하다. 엘사와 클라이브의 행동은 다름아닌 새로운 생명체의 의도적 창조이며, 그렇게 해서 창조된 드렌은 이것이 인간인지 아닌지 애매한, 아름답다면 아름답고 기괴하다면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다. 전술했다시피 이 ‘복제’의 영화에서 중요한 인물은 복제자이자 창조자인 엘사․클라이브와 복제․창조의 결과물인 드렌이다. 이 셋의 관계와, 극이 전개되면서 그들이 만들어낸 최종 결과를 살펴보면, 인간 복제를 다루는 다른 작품들과 공유되는, 상당히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의 부제가 “이 시대의 프로메테우스”라면, 《스플라이스》의 엘사와 클라이브는 “이 시대의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전 공포영화 《프랑켄슈타인의 신부》에서 메리 셸리 역을 맡은 여배우가 엘사 란체스터, 프랑켄슈타인 박사 역할을 맡은 남배우가 콜린 클라이브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매우 노골적이다). 드렌은 그들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엘사와 클라이브는 창조자이고, 복제자이며, 조물주이며, 부모이다. 특히 엘사는 자신의 난자를 채취해서 그것을 이용해 드렌을 만들어냈다. 클라이브가 단순히 비유적인 아버지라면, 엘사는 배가 아프지 않았을 뿐 드렌의 실제의 유사-어머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피조물이자 자식인 드렌에 대한 태도는 극이 진행됨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락가락하고, 최종적으로는 드렌을 퇴치되어야 할 괴물로 여기는 적대적 태도로 귀결된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들이 만든 괴물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것까지 빅토르 프랑켄슈타인과 똑같다.


그런데 프랑켄슈타인과 엘사․클라이브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무엇보다 그들이 ‘인간’이라는 점에 있다. 인간 복제의 문학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도전과 혼란을 다룬다고 해서, 그들이 생물학적으로 인간임을 부정하는 독자(관객)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다. 동시에 그들은 창조자이자 부모이다. 즉, 그들은 인간으로서, 자신들의 ‘괴물’을 의도적으로, 능동적으로 ‘창조’했고 ‘부모’가 되었다. 그들이 한 행동은 신에게 도전한 것이며, 소기의 성과를 이룸으로써 그들을 유사-신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자신의 창조주에게 스스로를 “당신의 아담”이라고 한 것은 다시 말해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야훼라는 뜻이 아닌가. 즉, 생물학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없이 인간인 엘사와 클라이브는 창조하는 존재고, 능동적인 존재이다. 그들은 피조물에 대하여 신인 것이다. 지나친 단순화라고 비판받을 수 있겠으나, 극의 초반에서 그들의 위치는 명백히 그러하다.

그런데 한갓 피조물에 불과한 드렌이 인간의 모습에 가까워짐에 따라 그들의 위치, 인간의 정체성은 도전받게 된다. 엘사는 어린 드렌을 처음에는 애완동물처럼, 나중에는 자신의 아이처럼 대한다. 엘사는 단순히 어머니의 애정이 결핍되어 있었던 자신의 보상심리에서 드렌을 그렇게 대한 것이지만(더구나 그녀는 드렌을 만들 때 사용된 난자가 자신의 것임을 클라이브와 달리 알고 있다. 전술했듯 드렌은 그녀의 실제 유사-딸인 것이다), 이 과정은 드렌의 지위가 ‘애완동물’에서 ‘딸’으로 상승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성체가 된 드렌이 클라이브를 유혹(드렌이 그린 조악한 그림의 변화에서 그녀의 애착 상대가 엘사에서 클라이브로 이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하고 클라이브가 드렌과 성교하는 것은, 괴물이자 피조물인 드렌이 인간이자 창조주인 클라이브와 동등한 지위에 올랐음을 노골적으로 나타낸다. 유혹의 주체는 드렌이고, 클라이브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능동적 존재여야 할 인간이 괴물에게 수동적으로 휘말린 것이다.

능동자는 강간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드렌과 클라이브의 성교는,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수컷으로 성전환한 드렌이 엘사를 범하는 것과 같은 강간이 아닌 화간이다. 또는 더 나아가서 해석하면 드렌이 클라이브를 역(逆)강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능동적 창조주인 인간과 수동적 피조물인 괴물이 동등해진, 또는 더 나아가면 그 위치가 역전된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에서도 창조주를 찾아낸 괴물이 그를 협박하면서 여자 괴물을 만들어내라고 요구한다. 잠시나마 괴물의 요구에 고분고분 따른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은 역전된 권력관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세상에 어떤 종교의 조물주가 피조물을 두려워하여 그 요구를 들어주는가. 이 관계는 이 시대의 프랑켄슈타인인 《스플라이스》에서 똑같은 관계로, 그리고 더욱 배덕적으로 변주된다. 수컷이 된 드렌이 엘사를 강간하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인간과 괴물(유사인간)의 위치가 역전되었음은 확실해진다. 이것만으로도 ‘인간’(=엘사와 클라이브)의 능동자로서의 정체성은 ‘괴물’(=드렌)에게 심대한 침해를 당한 것이며, 그들의 정체성은 불온한 상태에 빠진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엘사는 드렌에게 단순히 강간당한 것이 아니다. 강간당한 결과 드렌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제약회사와 계약을 맺음으로써 그 아이를 낳아야만 하는 부자유스러운 신세가 된다. 클라이브는 오쟁이를 진 것도 모자라 독침을 맞고 죽어버렸다. 드렌의 아이는 단순히 이 영화의 변태성, 배덕성을 드러내는 장치가 아니다. 영화의 시작으로 돌아가면, 드렌은 엘사의 독단으로 태어났다(클라이브는 처음에는 그녀를 말렸고, 인간과 유사해지는 드렌을 경계했다). 그리고 줄곧 엘사와 클라이브에 의해 그 존재가 은폐되었고, 성체가 된 뒤에는 시골 별장으로 옮겨졌다. 연구 자료를 분석해 드렌의 존재를 알아챈 연구소 동료들이 엘사와 클라이브 부부를 쫓아왔지만, 그 동료들은 드렌에게 모두 죽임을 당했다. 즉, 드렌이 그냥 죽었다면, 그 존재는 아예 없었던 것으로 처리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드렌은 아이를 남겼다. 그렇게 함으로써 드렌은 부정할 수 없는 존재자로서의 지위를 《스플라이스》의 세계 속에 확실히 새겼다.
창조주는 오쟁이와 씨받이로 전락하고
그리고, 드렌은 아이를 남겼다. 다시 말하면 아이를 ‘만들었다’. 드렌은 그 아이의 창조자가 된 것이다. 앞서 능동적 존재라는 인간의 지위를 빼앗았던 드렌은 이제는 창조주라는 인간의 지위마저 빼앗아 간 것이다. 이것은 결코 드렌이 인간과 동등한 창조주의 반열에 오른 것이 아니다. 드렌이 창조주가 되면서, 엘사와 클라이브는 그 지위에서 쫓겨나 추락했다. 엘사는 드렌의 아기를 기르는 자궁에 달린 부속물로 전락했고 그 아기를 낳는 것은 엘사의 의무가 되었다. 클라이브는 죽었고, 엘사는 도구화된 것이다.

2년 뒤에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 역시 이와 유사한, 사실 똑같은 관계가 나타난다. 로봇인 데이비드는 외계 문명의 유적지에서 채취한 정체불명의 검은 액체를 술에 타서 찰리에게 먹인다. 찰리는 여자친구 엘리자베스와 성교하고, 찰리가 죽은 뒤 엘리자베스는 사람이 아닌 것을 임신, 제왕절개로 그것을 꺼낸다. 다소의 우여곡절을 거쳐 최종적으로 탄생한 것은 《프로메테우스》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에일리언》의 괴생명체 ‘제노모프’와 생김새가 극히 유사한 ‘디컨’이다. 여기서 인간의 피조물인 데이비드는 자신의 창조주인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여 디컨이라는 자신의 창조물을 창조해낸다. 정체불명의 검은 액체는 데이비드가 찰리를 통해 전달한 데이비드의 유사-정액인 것이다. 찰리는 정액의 운반 수단에 불과하고, 엘리자베스는 디컨을 뱃속에서 기르고 낳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은 인간으로서 능동적으로, 의도적으로, 창조주이자 부모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 만들어진 피조물이자 자식인 유사인간이 능동성을 쟁취할 때, 그리고 창조주의 위치를 빼앗을 때, 마지막으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배덕적인 방식으로 인간을 도구화할 때,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 인간이 소유하던 모든 존엄한 가치와 지위들은 사라져 있다. 이 상황에서 과연 인간이 원래의 존엄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인가? 유사인간에게 빼앗길 수 없는 존엄은 무엇이 있는가? 난해한 질문이다. “이 시대의 프로메테우스” 《프랑켄슈타인》, “이 시대의 프랑켄슈타인” 《스플라이스》, 그리고 2년 뒤의 《프로메테우스》, 다시 “이 시대의 프로메테우스” 《프랑켄슈타인》, 이 질문은 북구 신화의 바다뱀처럼 자기 꼬리를 물고 무한히 돌아간다. 이 뱀을 끊어버릴 알렉산더의 칼은 어떻게 해야 빼들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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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듣는 문학 교양강의의 레포트로 제출한 글인데, 쓰고 보니 영화 리뷰의 모양새가 되어서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레포트는 자유주제였어요. 인간 복제라는 테마가 나오는 매체(소설이든 만화든 영화든)를 자유롭게 선택해서 자유롭게 썰을 푸는..

이러니저러니 의미부여를 하려고 애쓰긴 했는데, 변태돋고 악취미스러운 영화인 건 분명합니다. 드렌에 앞서 만들어진 해삼덩어리 "진저"와 "프레드"의 생김새는 남자의 물건을 연상시키고, 털 하나 없이 매끈하면서 세로로 쪼개진 금이 나 있는 드렌의 머리는 그야말로 귀두 그 자체니까요.
스토리상으로 등장하는 성적 요소만 해도 뭐 근친상간, 성전환, 강간, 수간, 임신...

흥행은 썩 좋지 않았는데, 뭐 줄거리만 봐도 망할 만한 영화였죠. 전 DVD로 봤습니다.


번역 작업은 아무래도 학기가 끝나야 본격적으로 재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이전에 한 편 정도는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난주에 보건소 정신과 선생님에게 그 소위 정체성 문제 얘기를 했죠. 힘들더군요. 허허허.

댓글 1개:

  1. 아무리 읽어도 병신같은 글인데 발표까지 시켜 주시고 A0 주신 교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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