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3일 일요일

[횡설수설] 안녕, 2012년

이미 2013년 3월 3일이 되었는데, 무슨 놈의 “안녕, 2012년”이냐고 의아해 하실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통 1월과 2월은 그 이전 해에 종속된 해가 아닌가요. 초등학교 이래 봄방학과 종/졸업식이 그러했고, 농사도 봄이 되어야 짓기 시작하지요(온실 농사는 예외입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3월에 접어들고 또 대학에 입학까지 하게 된 작금이야말로 제게 완전한 2012년의 끝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2012년만 끝난 게 아닙니다. 2001년 3월부터 시작된, 제 인생의 한 챕터가 끝난 것이니까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참 많은 것을 보았고,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어찌 보면 보람찼고, 어찌 보면 즐거웠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내 생애 한 점 후회는 없다!!】고 뻔뻔스럽게 내지를 자격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걸, 이렇게 했어야만 하지 않을까. 내가 왜 그 때 그랬을까. 여러 미련이 남는 12년이었습니다.
2월 하순 사진. 두류도서관 옥상에서는 대구의
랜드마크인 우방타워가 바로 보입니다.
오른쪽의 동그라미는 보름달입니다.
대구시립 두류도서관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다니기 시작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2년 3월 2일까지 출근 도장을 찍었던 곳입니다. 5년 동안 바깥 세계의 물가야 어찌 되든 말든 항상 균일가를 유지하는 먹거리가 정말 마음에 들었었지요. 캔음료 500원, 커피자판기 200원, 라면 2000원, 볶음밥 3000원, 비빔밥 오므라이스 돈가스 각 3500원, 치즈돈가스 4000원. 메뉴를 다 외울 정도로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중학교 시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준비했고, 기숙사에서 숙박했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시험기간에 외출을 하면 틈틈이 들렀습니다. 일종의 징크스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오래 다녔던 만큼,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어 바로 어제까지도 억지로 도서관에 들렀습니다. 물론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공부는 잘 되지 않았지만요. 물리 참고서 몇 쪽 보다가, 은하영웅전설 5권 버밀리언 회전이나 보다 왔습니다. 욥 트류니히트 개객기.

제가 이 도서관에서 한제국 건국사를 처음 읽었습니다. 위키백과 문서를 기여하기 위해 종합자료실에서 책을 뒤적인 적도 있었습니다.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열람실에 엎어져 잠들어 버린 적은 셀 수도 없습니다. 도서관 주위에는 벚나무가 심어져 있어, 4월경이 되면 벚꽃이 아주 흐드러지게 핍니다. 도서관 건물은 오래되었습니다. 검붉은 벽돌로 지어졌습니다. 이 도서관 생각만 하면 마음 한 켠이 아련합니다. 어제 두류도서관에 마지막으로 갔다가, 고등학교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에 다른 선생님을 이곳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

1월 중순 사진. 안녕, 두류도서관!
 3월 1일에는 동성로를 갔습니다. 이른바 젊음의 거리. 명실상부한 대구의 중심지.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지하상가의 로하스 후르츠라는 가게에서 와플을 사 먹었습니다. 이 가게 정말 맛있습니다. 가면서 아이스크림 와플을 먹고, 오면서 블루베리 와플을 먹었습니다. 교보문고에 가서 괜히 이곳저곳 기웃거렸습니다.

그 뒤 명덕네거리에 있는 코스모스서점에 갔습니다. 대구의 대표적인 헌책방입니다. 근 3년여를 이곳과 대구여고 인근의 물레책방을 다니면서 헌책을 사곤 했습니다. 톰 클랜시의 크레믈린의 추기경 상권을 발견했습니다. 하권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보다 더 전에는 중학교 때 선생님들을 찾아뵈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으셨습니다.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수능 치고 나서 근 넉 달 가까이 동네 길냥이들에게 먹이를 주었습니다. 길냥이 얘기는 나중에 마저 더 하지요.

지금 이곳은 대학 기숙사 안입니다.
밖에는 해가 지고 어두껌껌합니다.
내일 개강을 하면, 지난 12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을 맞이하게 되겠지요.
기대도 되지만, 사실 기대보다도 두려운 마음이 더 큽니다.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여기 속할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갖은 의문이 꼬리를 물듯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하면 너무 무책임한 걸까요, 뻔뻔한 걸까요.

불현듯 대구의 와플맛이 그리워집니다.
할머니께서 쑤어 주신 곰탕 역시 그러합니다.
외할머니의 꺼칠한 손바닥이 떠오릅니다.
부모님과 동생,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들, 고등학교 동기들.
중학교 선생님, 고등학교 선생님,
두류도서관 직원분들. 중학교, 고등학교, 도서관의 식당 아주머니들.
숱한 얼굴들이 눈 앞을 스쳐 지나갑니다.
눈물이라고 할 수준은 아니지만, 눈꼬리에 물기가 느껴집니다.

안녕, 12년 동안의 2012년.

댓글 2개:

  1. 이제 대학생이시라니... 글쓰신거 보고 당연히 대학생이시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보나마나 설포카시겠네요. 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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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포카라뇨 그건 어디 있는 특이점의 삼각지대죠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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